마라케쉬, Marrakesh
마라케쉬, Marrakesh
약 1,100,000 (2016)
예술가들이 사랑 했던 매혹의 도시
마라케시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한 곳으로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와 유영인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던 도시다. 윈스턴 처서칠은 마라케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고, 이브 생 로랑은 마라케시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말년을 마라케시의 별장에서 보냈다. 또한 20세기의 위대한 지성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열리아스 카네티는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통해서 마라케시를 세상에 알렸다. 이 밖에도 크리스티앙 디오르, 바비 브라운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마라케시에 빠졌던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마라캐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도시다.
온동 황토빛인 마라케시 전경
마라케시는 라바트, 메크네스, 페스에 이어, 모로코 왕국의 4대 수도 가운데 하나다. 만년설 덮인아틀라스 산맥 가까이에 자리잡은 반 사막 평원에 위치한 마라케시는 오늘날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로, 약 110만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모로코의 주요 관광지이다. 멀리서 마라게시를 향해 다가서면, 황듯빛의 도시 외벽과 건물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70m 높이의 800년이나 된 쿠투비아(Koutoubia) 모스크의 첨탑이 대추야자로 뒤덮인 드넓은 평원 위로 솟아 오른다. 모로코에서 3번째로 큰 도시 마라케쉬는 폐즈 다을으로 역사가 깊다. 베르베르인이 세운 도시로 11세기 알모라비데 왕조 때 수도로 건설되어 12세기 알모하드 왕조 시기에 최진성기 구가하였고 이후 페스로 수도가 옮겨진 뒤, 쇠퇴의 길을 걷다 16세기 사디 왕조 때 다시 수도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카사플랑카에서 남쪽으로 240km 떨어진 아틀리스 산액 가장자리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로 도시 전 제가 붉은 홈빛의 천연건축재료 흙으로 지어진 성벽과 모스크, 그리고 좁은 골목길을 낀 다닥다닥 물어있는 주거지 때문에 '붉은 도시' 또는 '붉은 진주'라 불리 운다. 페즈의 메디나 처럼 마라케쉬의 메디나도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중세 아랍 건축술이 집대성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현재에는 모로코 관광의 중심지로, 유럽인들이 바캉스철에 즐겨 찾는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마라케쉬에는 해마다 각종 공연, 전시회 및 학술회의가 개최된다. 현재 모로코의 젊은 국왕은 마라케쉬를 변화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중으로, 다가오는 2010-2020년에 이 도시에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하였다.
주요 관광지
⊙ 제마 엘 프나 (Djema el Fna) 광장
‘사형수들의 모임’ 혹은 ‘죽은 자들의 광장’ 이라는 뜻의 이 광장은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효수한 머리를 전시하여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던 곳이었다. 20세기 중반에 모로코 정부가 이 광장을 폐쇄하여 곡물시장으로 개발하려 하였으나, 시체(!)를 제외하고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해가 질 무렵, 하나 둘씩 줄지어 늘어선 간이 음식점에 전등불이 켜지고 뱀 부리는 사람, 춤꾼, 마술사, 약장사, 카드점 봐주는 여자들과 구경꾼, 소매치기 등으로 광장이 메워지기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현대판 천일야화의 한 장면 속에 자신이 등장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넋을 빼놓고 있다가는 소지품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광장을 뒤로하고 마라케시의 아랍식 전통시장인 수크(souq)가 위치해 있다, 마라케시의 구시가지인 메디나 안의 수크(soug)는 미로같이 내부가 복잡하게 이어지는 시장으로 수공예품등 여러가지 물건들을 판다. 제마 엘 프나 광장으로 돌아가면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수크(Souq)'가 있다. 수크는 이슬람의 전동시장을 말하는 것으로, 마라케시의 수크는 모로코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수크 안으로 들어가면 수공예품, 가죽제품, 카펫, 공예품과 온갖 종류의 향신료, 견과류까지 없는것이 없다. 특히 모로코는 예로부터 염색기술이 뛰어났기 태문에 가죽제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 바히아 궁 (Bahia Palace) ‘아름다운’ 이라는 뜻의 바히아 궁은 19세기 말에 당시 왕국의 실권자였던 Sidi Moussa 수상에 의해 지어졌다. 그의 부인 4명과 24명에 이르는 첩들이 궁의 안뜰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였다. 바히아는 무슬림 건축의 사생활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즉,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화살표를 잘 따라가지 않으면 헷갈리기 쉽다.
바이아 궁전은 1792년 세워진 화려하고 독특한 형태로 설계된 궁전이다. 궁전 내부의 각방들은 화려한 전통 모로코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궁전의 가운데는 정원이 있어서 마치 한옥처럼 중정이 있는 형태로 건축이 되어있었다. 궁전 내부에 채색된 모든 종류의 색은 자연에서 재취만 색으로 주로 꽃에서 색을 얻는다. 궁전의 지붕은 녹색인데 이것은 선지자 마호메트를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그곳에서는 요즘 유명 가수들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 꾸뚜비아 회교사원 (Koutoubia)
12세기에 알모하드 왕조의 야꿉 엘 만수르 Yacoub el Mansour 술탄 때에 건설되었다. 동 시대의 건축물로는 라바트의 Tour Hassan과 스페인 세비야의 Giralda 탑이 있는데, 당시 모로코와 안달루시아의 건축 양식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나를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 꾸뚜비아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책 파는 사람 '꾸뚜비인'에서 유래) 과거 이곳에 큰 책 시장이 열렸었음을 알 수 있다. 메디나 안에는 아랍운명을 보여 주는 역사직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만 민저 마라케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바로 쿠투비아 모스크로 이슬람 3대 사원으로 톱힌다. 도시 중앙에 위치하며 모스크의 첨탑은 높이가 67m나 되어 메디나 어디에서건 바라보이며 이슬람 건축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 규모를 보면 무지가 5400㎡에 예배소가 17개나 있어 2만5선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는 메머드 시설로 모스크가 지어진 12세기 당시의 메디나의 위상을 실감하개 된다.
아랍-히스패닉계 건축의 최대 결작으로 불리우는 이 사원에는 당대 왕의 부인이 소유했던 귀금속을 녹여 만들었다는 금 고리로 장식된 쿠투비아 첨탑은 마리라케시를 수호하는 7인의 성인을 상징하는 7층 구로 첨탑 앞에는 3개의 황금 왕관을 얹어 아침저녁으로 햇살을 받아 웅장미를 자아낸다. 첨탑의 높이와 폭 비율은 모로코의 거의 모든 사원에 적용되는 5:1을 적용해 날렵함과 안정감을 더해준다. 사각형과 아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창틀 또한 미감울 고조시키는데 한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첨탑의 벽은 장밋빛에서 붉은 빛이 도는 따뜻한 색의 석재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주는 벽의 아랫 부분과는 달리 벽의 윗부분은 4면에 서로 다른 장식이 섬세하기 조각되어 있어서 돌이라는 거칠고 투박한 재료를 부드럽게 해준다.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 꼭대기 부분은 유네스코의 보호 아래 녹색과 흰색 도기로 된 띠가 복원되었다. 미나렛 꼭대기에는 모스크에서는 이례적인 숫자인 3개의 구가 세위져있다.성내에는 쿠투비아와 비슷한 외관을 가진 엘 만수르 모스크와 왕궁, 신기의 아라베스크 장식이 창과 벽면을 휘감고 있는 사아딘 왕묘 등이 있다.
⊙ 사아디안 왕릉 (Saadian Mausoleum)
16세기를 풍미했던 사아디안 왕조의 능은 입구가 봉해져 있어 오랜 세월 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20세기 초 모로코의 프랑스 총독이었던 Lyautey가 항공으로 이 지역의 지형을 조사하던 중 발견되어 공개되었다.
비좁은 통로를 거쳐 내부로 들어가면 12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는 십이주실, 아흐메드 엘 만수르 에다비 Ahmed el Mansour Eddahbi 왕 및 그의 식솔과 신하들이 잠들어 있는 Koubba가 나오는데, 멀리 안 쪽으로는 아흐메드 왕의 부왕 및 비가 모셔져 있다.
⊙ 바디 궁 (Badi Palace)
'비할 수 없는' (Incomparable) 뜻의 이 왕궁은 1578년 당시 왕 아흐메드 엘 만수르 에다비 Ahmed el Mansour Eddahbi가 삼왕전쟁에서 돌아온 뒤 지었다. 그는 전쟁에서 포르투갈에 대승을 거두어서 그 보상금으로 엄청난 양의 금을 받았고, 당시 무역의 주요 품목인 기니의 금 및 설탕으로 큰 부를 축적하였다. 이 부를 이용하여 이베리아 반도 안달루시아의 유명한 장인을 불러들였고, 이탈리아산 대리석, 프랑스산 오닉스 등을 수입하여 궁을 건설하였고, 이때문에 당시 궁의 모습은 여타 궁전과 ‘비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러나 뒤를 이은 알라우이트 왕조에 의해 훼손이 되어 현재는 과거의 영화로운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다.
⊙ 다르 시 사이드 (Dar Si Said)
Si Said는 Bou-Ahmed의 형제로 19세기 말에 이 저택을 지었는데, 1932년에 마라케쉬 및 모로코 남부의 예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오늘날 이 박물관에는 하이 아틀라스, 안티 아틀라스 및 극남 지방에서 수집한 보석 종류, 하우즈와 하이 아틀라스산 양탄자, Tarudant의 기름등잔, Safi의 청색자기, Tamegroute의 녹색자기 및 마라케쉬의 가죽 공예품을 포함한 뛰어난 예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 마조렐 정원 (Majorell Garden)
이 정원은 1922년에서 1962년까지 이 곳에서 살던 프랑스 화가인 Jacques Majorelle이 설계하였는데 현재는 Pierre Berge-Yves Saint Laurent 기금 소유이다. 강렬한 파란색 건물과 이국적인 식물이 어우러진 이 곳에는 모로코 예술품 및 Majorelle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메종 티스키윈 (Maison Tiskiwin)
네덜란드인 Bert Flint은 예술 강사로 모로코에 오래 머물고 있는데, 모로코 및 아프리카 문화를 탐구하는 그는 이제까지 수집한 모로코의 공예품을 전시해 놓았다.
⊙ 메나라 (Menara) 별궁
알모라비드 왕조 때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현재에도 아틀라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주변에 널리 뻗어있는 올리브 숲에 물을 공급한다.
한편, 1869년 지어진 별관이 있는데, 과거에는 여름의 더운 열기를 피해 술탄과 고급 관료들이 이 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맑은 날, 저 멀리 보이는 아틀라스 산맥을 배경으로 별관을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예술가들이 사랑 했던 매혹의 도시
마라케시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한 곳으로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와 유영인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던 도시다. 윈스턴 처서칠은 마라케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고, 이브 생 로랑은 마라케시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말년을 마라케시의 별장에서 보냈다. 또한 20세기의 위대한 지성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열리아스 카네티는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통해서 마라케시를 세상에 알렸다. 이 밖에도 크리스티앙 디오르, 바비 브라운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마라케시에 빠졌던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마라캐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도시다.
온동 황토빛인 마라케시 전경
마라케시는 라바트, 메크네스, 페스에 이어, 모로코 왕국의 4대 수도 가운데 하나다. 만년설 덮인아틀라스 산맥 가까이에 자리잡은 반 사막 평원에 위치한 마라케시는 오늘날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로, 약 110만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모로코의 주요 관광지이다. 멀리서 마라게시를 향해 다가서면, 황듯빛의 도시 외벽과 건물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70m 높이의 800년이나 된 쿠투비아(Koutoubia) 모스크의 첨탑이 대추야자로 뒤덮인 드넓은 평원 위로 솟아 오른다. 모로코에서 3번째로 큰 도시 마라케쉬는 폐즈 다을으로 역사가 깊다. 베르베르인이 세운 도시로 11세기 알모라비데 왕조 때 수도로 건설되어 12세기 알모하드 왕조 시기에 최진성기 구가하였고 이후 페스로 수도가 옮겨진 뒤, 쇠퇴의 길을 걷다 16세기 사디 왕조 때 다시 수도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카사플랑카에서 남쪽으로 240km 떨어진 아틀리스 산액 가장자리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로 도시 전 제가 붉은 홈빛의 천연건축재료 흙으로 지어진 성벽과 모스크, 그리고 좁은 골목길을 낀 다닥다닥 물어있는 주거지 때문에 '붉은 도시' 또는 '붉은 진주'라 불리 운다. 페즈의 메디나 처럼 마라케쉬의 메디나도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중세 아랍 건축술이 집대성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현재에는 모로코 관광의 중심지로, 유럽인들이 바캉스철에 즐겨 찾는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마라케쉬에는 해마다 각종 공연, 전시회 및 학술회의가 개최된다. 현재 모로코의 젊은 국왕은 마라케쉬를 변화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중으로, 다가오는 2010-2020년에 이 도시에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하였다.
주요 관광지
⊙ 제마 엘 프나 (Djema el Fna) 광장
‘사형수들의 모임’ 혹은 ‘죽은 자들의 광장’ 이라는 뜻의 이 광장은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효수한 머리를 전시하여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던 곳이었다. 20세기 중반에 모로코 정부가 이 광장을 폐쇄하여 곡물시장으로 개발하려 하였으나, 시체(!)를 제외하고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해가 질 무렵, 하나 둘씩 줄지어 늘어선 간이 음식점에 전등불이 켜지고 뱀 부리는 사람, 춤꾼, 마술사, 약장사, 카드점 봐주는 여자들과 구경꾼, 소매치기 등으로 광장이 메워지기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현대판 천일야화의 한 장면 속에 자신이 등장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넋을 빼놓고 있다가는 소지품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광장을 뒤로하고 마라케시의 아랍식 전통시장인 수크(souq)가 위치해 있다, 마라케시의 구시가지인 메디나 안의 수크(soug)는 미로같이 내부가 복잡하게 이어지는 시장으로 수공예품등 여러가지 물건들을 판다. 제마 엘 프나 광장으로 돌아가면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수크(Souq)'가 있다. 수크는 이슬람의 전동시장을 말하는 것으로, 마라케시의 수크는 모로코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수크 안으로 들어가면 수공예품, 가죽제품, 카펫, 공예품과 온갖 종류의 향신료, 견과류까지 없는것이 없다. 특히 모로코는 예로부터 염색기술이 뛰어났기 태문에 가죽제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 바히아 궁 (Bahia Palace) ‘아름다운’ 이라는 뜻의 바히아 궁은 19세기 말에 당시 왕국의 실권자였던 Sidi Moussa 수상에 의해 지어졌다. 그의 부인 4명과 24명에 이르는 첩들이 궁의 안뜰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였다. 바히아는 무슬림 건축의 사생활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즉,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화살표를 잘 따라가지 않으면 헷갈리기 쉽다.
바이아 궁전은 1792년 세워진 화려하고 독특한 형태로 설계된 궁전이다. 궁전 내부의 각방들은 화려한 전통 모로코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궁전의 가운데는 정원이 있어서 마치 한옥처럼 중정이 있는 형태로 건축이 되어있었다. 궁전 내부에 채색된 모든 종류의 색은 자연에서 재취만 색으로 주로 꽃에서 색을 얻는다. 궁전의 지붕은 녹색인데 이것은 선지자 마호메트를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그곳에서는 요즘 유명 가수들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 꾸뚜비아 회교사원 (Koutoubia)
12세기에 알모하드 왕조의 야꿉 엘 만수르 Yacoub el Mansour 술탄 때에 건설되었다. 동 시대의 건축물로는 라바트의 Tour Hassan과 스페인 세비야의 Giralda 탑이 있는데, 당시 모로코와 안달루시아의 건축 양식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나를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 꾸뚜비아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책 파는 사람 '꾸뚜비인'에서 유래) 과거 이곳에 큰 책 시장이 열렸었음을 알 수 있다. 메디나 안에는 아랍운명을 보여 주는 역사직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만 민저 마라케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바로 쿠투비아 모스크로 이슬람 3대 사원으로 톱힌다. 도시 중앙에 위치하며 모스크의 첨탑은 높이가 67m나 되어 메디나 어디에서건 바라보이며 이슬람 건축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 규모를 보면 무지가 5400㎡에 예배소가 17개나 있어 2만5선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는 메머드 시설로 모스크가 지어진 12세기 당시의 메디나의 위상을 실감하개 된다.
아랍-히스패닉계 건축의 최대 결작으로 불리우는 이 사원에는 당대 왕의 부인이 소유했던 귀금속을 녹여 만들었다는 금 고리로 장식된 쿠투비아 첨탑은 마리라케시를 수호하는 7인의 성인을 상징하는 7층 구로 첨탑 앞에는 3개의 황금 왕관을 얹어 아침저녁으로 햇살을 받아 웅장미를 자아낸다. 첨탑의 높이와 폭 비율은 모로코의 거의 모든 사원에 적용되는 5:1을 적용해 날렵함과 안정감을 더해준다. 사각형과 아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창틀 또한 미감울 고조시키는데 한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첨탑의 벽은 장밋빛에서 붉은 빛이 도는 따뜻한 색의 석재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주는 벽의 아랫 부분과는 달리 벽의 윗부분은 4면에 서로 다른 장식이 섬세하기 조각되어 있어서 돌이라는 거칠고 투박한 재료를 부드럽게 해준다.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 꼭대기 부분은 유네스코의 보호 아래 녹색과 흰색 도기로 된 띠가 복원되었다. 미나렛 꼭대기에는 모스크에서는 이례적인 숫자인 3개의 구가 세위져있다.성내에는 쿠투비아와 비슷한 외관을 가진 엘 만수르 모스크와 왕궁, 신기의 아라베스크 장식이 창과 벽면을 휘감고 있는 사아딘 왕묘 등이 있다.
⊙ 사아디안 왕릉 (Saadian Mausoleum)
16세기를 풍미했던 사아디안 왕조의 능은 입구가 봉해져 있어 오랜 세월 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20세기 초 모로코의 프랑스 총독이었던 Lyautey가 항공으로 이 지역의 지형을 조사하던 중 발견되어 공개되었다.
비좁은 통로를 거쳐 내부로 들어가면 12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는 십이주실, 아흐메드 엘 만수르 에다비 Ahmed el Mansour Eddahbi 왕 및 그의 식솔과 신하들이 잠들어 있는 Koubba가 나오는데, 멀리 안 쪽으로는 아흐메드 왕의 부왕 및 비가 모셔져 있다.
⊙ 바디 궁 (Badi Palace)
'비할 수 없는' (Incomparable) 뜻의 이 왕궁은 1578년 당시 왕 아흐메드 엘 만수르 에다비 Ahmed el Mansour Eddahbi가 삼왕전쟁에서 돌아온 뒤 지었다. 그는 전쟁에서 포르투갈에 대승을 거두어서 그 보상금으로 엄청난 양의 금을 받았고, 당시 무역의 주요 품목인 기니의 금 및 설탕으로 큰 부를 축적하였다. 이 부를 이용하여 이베리아 반도 안달루시아의 유명한 장인을 불러들였고, 이탈리아산 대리석, 프랑스산 오닉스 등을 수입하여 궁을 건설하였고, 이때문에 당시 궁의 모습은 여타 궁전과 ‘비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러나 뒤를 이은 알라우이트 왕조에 의해 훼손이 되어 현재는 과거의 영화로운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다.
⊙ 다르 시 사이드 (Dar Si Said)
Si Said는 Bou-Ahmed의 형제로 19세기 말에 이 저택을 지었는데, 1932년에 마라케쉬 및 모로코 남부의 예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오늘날 이 박물관에는 하이 아틀라스, 안티 아틀라스 및 극남 지방에서 수집한 보석 종류, 하우즈와 하이 아틀라스산 양탄자, Tarudant의 기름등잔, Safi의 청색자기, Tamegroute의 녹색자기 및 마라케쉬의 가죽 공예품을 포함한 뛰어난 예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 마조렐 정원 (Majorell Garden)
이 정원은 1922년에서 1962년까지 이 곳에서 살던 프랑스 화가인 Jacques Majorelle이 설계하였는데 현재는 Pierre Berge-Yves Saint Laurent 기금 소유이다. 강렬한 파란색 건물과 이국적인 식물이 어우러진 이 곳에는 모로코 예술품 및 Majorelle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메종 티스키윈 (Maison Tiskiwin)
네덜란드인 Bert Flint은 예술 강사로 모로코에 오래 머물고 있는데, 모로코 및 아프리카 문화를 탐구하는 그는 이제까지 수집한 모로코의 공예품을 전시해 놓았다.
⊙ 메나라 (Menara) 별궁
알모라비드 왕조 때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현재에도 아틀라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주변에 널리 뻗어있는 올리브 숲에 물을 공급한다.
한편, 1869년 지어진 별관이 있는데, 과거에는 여름의 더운 열기를 피해 술탄과 고급 관료들이 이 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맑은 날, 저 멀리 보이는 아틀라스 산맥을 배경으로 별관을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역사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문화유산으로 오랫동안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이곳은 서부 무슬림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마라케쉬는 1071-1072년에 건설된 알모하드 시대의 수도로 메디나에는 인상적인 많은 건축적 걸작품이 있으며 성벽, 기념문, 77m의 첨탑이 있는 쿠투비야 모스크, 사아디안 무덤, 기타 오래된 가옥등이 있다. 옛 이슬람 시가지는 붉은 색으로 채색된 미로와 같은 시가와 독특한 건물들로 눈 길을 끌며, 마라케시라는 지명은 다른 나라에 이 곳을 대표하는 왕국 이름으로 잘못 알려져, 모로코라는 국명의 어원이 되었다. 도시 전체가 붉은 빛을 띠는 마라케시는 카사블랑카에서 아틀라스 산맥 북쪽 기슭 약 250km 떨어진 곳으로 도시의 시작은 1062년 알모라비데 왕국의 수도로 건설되었다. 사하라 사막을 가로막은 아틀라스 산맥 기슭의 오아시스 같은 도시인 마라케시는 울창한 대추 야자나무, 올리브 나무 농원이 곳곳에 있으며, 북아프리카에서 드물게 보이는 아틀라스 산맥의 만년설로 이국적인 분위기 로 가득한 도시다.
흙의 색깔도, 도시를 둘러산 성벽도, 우뚝 솟은 모스크도, 다닥타닥 붙은 작은 집들도,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도 모두가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붉은 도시' 혹은 '붉은 진주'라 불리는 도시 마라케시는 모로코에서 페스(Fez)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11세기 베르베르인의 알모라비데(Almorabides) 왕조로 마라케시는 유세프 벤 타쉬핀(Youssef ben Tachfin) 술탄이 아무 베크르(Abou Bekr)에게 물려받은 주둔지에 1071년~1072년까지 건설한 도시이다. 이후 알모라비드 왕조의 정착지로 자리를 잡아 오랜 기간 정치· 경제·문화 중심지였다. 마라케시는 사하라에서 에브로까지, 대시양에서 카빌리아까지 제국을 확장하며 정복 유목민의 진정한 수도가 되었다. 그후 12세기 알모하드(Almohad) 왕조 시기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16세기 사디(Saadi) 왕조 때도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다.
마라케쉬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의 뒷골목과 아랍 건축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건축물들, 그리고 모로코 사람들의 활기잔 생활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도시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라케쉬는 북아프리카에서 안달루시아에 이르는 서부 무슬림 지역 전익에 그 영향력을 미쳤다. 당시의 인상적인 유산으로는 쿠두비아(Koutoubia) 모스크·카스바· 성벽·기념문· 정원 등이 있다. 훗날 건축의 보석이라 불린 바디아 궁전 (Badia Palace), 벤 유세프 (Ben Youssef) 이슬람 학교, 사디안 왕가(Saadian)의 묘와 몇몇 내지택을 비롯하이 진정한 노천극장이라고 할만안 자마 엘프나(Jamal ElFnaa) 광장도 포함된다. 알모라바드와 알모하드(Almohad) 시대의 수도 마라케시(Marrakesh)는 중세 도시 계획 발전에서 중요관 역할을 하였다. 모로코 제국의 이름이 된 마라케시는 서구 세계의 대형 이슬람 수도의 교과서와도 같은 사례이다. 또한 이 고대 주거지는 미로 같은 좁은 도로와 가옥, 시장, 전통 수공예품, 교역 활동, 메디나(medina, 옛 시가지) 등의 특징을 가진 생생한 역사 도시의 사례이다. 메디나 최초의 도시 배치는 알모라비드 왕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기념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데, 아부 베크르의 카스바(Kasbah. 성채), 유세프 벤 타쉬핀 모스크, 쿠두비아 모스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알리 벤 유세프 궁, 1955년 발견된 알리 벤 유세프 모스크의 연못과 쿱바(Koubba, 이슬람교 성자의 무덤), 바브 아이란 문(Bab Aylan gate) 등이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마라케시의 옛 도시 모델을 적용한 것이다. 메디나의 성벽은 알리 벤 유세프의 명령으로 1126년~1127년에 건설되었다. 알모라비드 왕조는 또한 야자 숲을 조성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도시동쪽의 약 13.000ha를 차지하고 있다.
1147년 압델 무멘(Abdel Moumen)이 이끄는 알모하드가 침략해 왔을때 이 왕조는 무릎을 꿇었다. 대개 승리에 도취한 절복자들은 지역을 쓸어버리며 역사 유산에 자비를 배풀지 않는다. 마라쉬시의 유산 역시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림에도 마라케시는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알모하드 왕조의 지배 아래(1147~1209) 새롭고 전레 없던 번영을 누렸다.
압데무멘은 1147~1158년 사이데 알모라비드 유적 위에 쿠투비아 모스크를 지었다. 더이상 견줄 만한 것이 없는 사원의 첨탑은 무슬림 건축 양식을 대변하는 핵심 유산으로 도시 경관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자 도시의 상징이다. 계승자인 아부 야쿠브 유세프(Abou Yacoub Yousscf)와 특히 야무브 엘 만수르(Yacoub el Mansour)는 도시에 큰 변화를 가져온 지배자들이었다.
그들은 새 도시 구역을 건설하고, 성곽을 확장하였다. 또한 카스바를 요새화했다(1185~1190). 도시는 남쪽으로 확대되었고, 누벽과 문(바브 아그누·바브 로브), 사원·궁전·시장·병원·퍼레이드 광장-정원이 들어섰다. 이 지도자들은 메나라에서 서부 지역까지 작물 경작을 하고, 토목 공사를 하는 방식으로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텐시프트(Tensift) 다리와 야자 농장인 케타라(kettara)이다.
따라케시는 메리니드 왕가가 1269년 도시를 점령하면서부터 쇠락하였지만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은 아니다. 이는 1321년에서 지은 벤 살리 모스크와 첨탑 등과 같은 무시할 수 없는 몇몇 건축물로 설명된다. 1510~1669년 사디 왕가의 지배 아래, 수도는 재단생하며 예술을 새롭게 꽃피웠다. 엘 바디 궁 유적과 성벽으로 인해 카스바에서 분리되어 있는 건축물인 사디 왕조의 묘가 이를 입증한다.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문화유산으로 오랫동안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이곳은 서부 무슬림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마라케쉬는 1071-1072년에 건설된 알모하드 시대의 수도로 메디나에는 인상적인 많은 건축적 걸작품이 있으며 성벽, 기념문, 77m의 첨탑이 있는 쿠투비야 모스크, 사아디안 무덤, 기타 오래된 가옥등이 있다. 옛 이슬람 시가지는 붉은 색으로 채색된 미로와 같은 시가와 독특한 건물들로 눈 길을 끌며, 마라케시라는 지명은 다른 나라에 이 곳을 대표하는 왕국 이름으로 잘못 알려져, 모로코라는 국명의 어원이 되었다. 도시 전체가 붉은 빛을 띠는 마라케시는 카사블랑카에서 아틀라스 산맥 북쪽 기슭 약 250km 떨어진 곳으로 도시의 시작은 1062년 알모라비데 왕국의 수도로 건설되었다. 사하라 사막을 가로막은 아틀라스 산맥 기슭의 오아시스 같은 도시인 마라케시는 울창한 대추 야자나무, 올리브 나무 농원이 곳곳에 있으며, 북아프리카에서 드물게 보이는 아틀라스 산맥의 만년설로 이국적인 분위기 로 가득한 도시다.
흙의 색깔도, 도시를 둘러산 성벽도, 우뚝 솟은 모스크도, 다닥타닥 붙은 작은 집들도,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도 모두가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붉은 도시' 혹은 '붉은 진주'라 불리는 도시 마라케시는 모로코에서 페스(Fez)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11세기 베르베르인의 알모라비데(Almorabides) 왕조로 마라케시는 유세프 벤 타쉬핀(Youssef ben Tachfin) 술탄이 아무 베크르(Abou Bekr)에게 물려받은 주둔지에 1071년~1072년까지 건설한 도시이다. 이후 알모라비드 왕조의 정착지로 자리를 잡아 오랜 기간 정치· 경제·문화 중심지였다. 마라케시는 사하라에서 에브로까지, 대시양에서 카빌리아까지 제국을 확장하며 정복 유목민의 진정한 수도가 되었다. 그후 12세기 알모하드(Almohad) 왕조 시기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16세기 사디(Saadi) 왕조 때도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다.
마라케쉬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의 뒷골목과 아랍 건축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건축물들, 그리고 모로코 사람들의 활기잔 생활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도시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라케쉬는 북아프리카에서 안달루시아에 이르는 서부 무슬림 지역 전익에 그 영향력을 미쳤다. 당시의 인상적인 유산으로는 쿠두비아(Koutoubia) 모스크·카스바· 성벽·기념문· 정원 등이 있다. 훗날 건축의 보석이라 불린 바디아 궁전 (Badia Palace), 벤 유세프 (Ben Youssef) 이슬람 학교, 사디안 왕가(Saadian)의 묘와 몇몇 내지택을 비롯하이 진정한 노천극장이라고 할만안 자마 엘프나(Jamal ElFnaa) 광장도 포함된다. 알모라바드와 알모하드(Almohad) 시대의 수도 마라케시(Marrakesh)는 중세 도시 계획 발전에서 중요관 역할을 하였다. 모로코 제국의 이름이 된 마라케시는 서구 세계의 대형 이슬람 수도의 교과서와도 같은 사례이다. 또한 이 고대 주거지는 미로 같은 좁은 도로와 가옥, 시장, 전통 수공예품, 교역 활동, 메디나(medina, 옛 시가지) 등의 특징을 가진 생생한 역사 도시의 사례이다. 메디나 최초의 도시 배치는 알모라비드 왕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기념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데, 아부 베크르의 카스바(Kasbah. 성채), 유세프 벤 타쉬핀 모스크, 쿠두비아 모스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알리 벤 유세프 궁, 1955년 발견된 알리 벤 유세프 모스크의 연못과 쿱바(Koubba, 이슬람교 성자의 무덤), 바브 아이란 문(Bab Aylan gate) 등이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마라케시의 옛 도시 모델을 적용한 것이다. 메디나의 성벽은 알리 벤 유세프의 명령으로 1126년~1127년에 건설되었다. 알모라비드 왕조는 또한 야자 숲을 조성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도시동쪽의 약 13.000ha를 차지하고 있다.
1147년 압델 무멘(Abdel Moumen)이 이끄는 알모하드가 침략해 왔을때 이 왕조는 무릎을 꿇었다. 대개 승리에 도취한 절복자들은 지역을 쓸어버리며 역사 유산에 자비를 배풀지 않는다. 마라쉬시의 유산 역시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림에도 마라케시는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알모하드 왕조의 지배 아래(1147~1209) 새롭고 전레 없던 번영을 누렸다.
압데무멘은 1147~1158년 사이데 알모라비드 유적 위에 쿠투비아 모스크를 지었다. 더이상 견줄 만한 것이 없는 사원의 첨탑은 무슬림 건축 양식을 대변하는 핵심 유산으로 도시 경관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자 도시의 상징이다. 계승자인 아부 야쿠브 유세프(Abou Yacoub Yousscf)와 특히 야무브 엘 만수르(Yacoub el Mansour)는 도시에 큰 변화를 가져온 지배자들이었다.
그들은 새 도시 구역을 건설하고, 성곽을 확장하였다. 또한 카스바를 요새화했다(1185~1190). 도시는 남쪽으로 확대되었고, 누벽과 문(바브 아그누·바브 로브), 사원·궁전·시장·병원·퍼레이드 광장-정원이 들어섰다. 이 지도자들은 메나라에서 서부 지역까지 작물 경작을 하고, 토목 공사를 하는 방식으로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텐시프트(Tensift) 다리와 야자 농장인 케타라(kettara)이다.
따라케시는 메리니드 왕가가 1269년 도시를 점령하면서부터 쇠락하였지만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은 아니다. 이는 1321년에서 지은 벤 살리 모스크와 첨탑 등과 같은 무시할 수 없는 몇몇 건축물로 설명된다. 1510~1669년 사디 왕가의 지배 아래, 수도는 재단생하며 예술을 새롭게 꽃피웠다. 엘 바디 궁 유적과 성벽으로 인해 카스바에서 분리되어 있는 건축물인 사디 왕조의 묘가 이를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