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분파
이슬람 정치와 종교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용어들 중 두 가지는 "순니"와 "쉬아"이다. 이슬람을 대표하는 분파인 순니와 쉬아는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의 경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이슬람의 기본 교리와 관행(5주 6신)에서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단합과 단일화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사상에서 무슬림(또는 이슬람) 세계는 여러 분파로 분할되어 있다. 무슬림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부터 표면화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예언자가 사망한 직후 가장 현안으로 대두되었던 문제는 칼리파(교권 계승자 후계자) 계승에 관련된 문제였다. 그 결과 무슬림들은 순니파와 쉬아파로 분열되었다. 순니파는 전체 무슬림 공동체(움마)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순니란 문자적으로 '무함마드의 순나(말과 행동, 즉 관행)를 따르는 자들'을 의미한다. 무슬림 세계에서 소수파인 쉬아파는 움마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순니파는 정통파로 알려져 있다. 이 파는 예언자 사후 칼리파가 예언자 부족인 꾸라이쉬 출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공동체는 슈라(최초의 의회제도)와 합의(이즈마)를 통해 후계자를 선출하였다. 꾸란과 하디쓰에 의하면, 이렇게 선출된 지도자가 바로 이슬람 공동체를 운영할 책임을 지는 칼리파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무함마드의 지위나 위치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최후의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이슬람 공동체는 4명의 정통 칼리파에 의해 운영되었다. 1대 칼리파는 아부 바크르(632-634), 2대 칼리파는 우마르(634-644), 3대 칼리파는 우쓰만(644-656), 그리고 4대 칼리파는 알리(656-661)였다. 이들은 순나(예언자의 관행)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운영하였다. 순나를 따랐던 순니파는 이슬람 공동체의 총괄적인 법체계를 확립했으며, 이를 샤리아(이슬람 법)로 발전시켰다. 초기 4명의 칼리파 이후 이슬람 세계에는 여러 다양한 칼리파 제국과 세습 왕조가 등장하였다. 순니파에게 칼리파는 샤리아의 보호자 겸 운영자였다.
칼리파 제도는 1924년 터키의 아타 튀르크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는 곧 오스만 터키(투르크) 제국의 종말을 의미하였다. 20세기초에 등장한 이슬람 국가들은 조직과 체계를 확립하는 데 법적 근원으로 샤리아를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이들 국가들은 칼리파 대신 저명한 종교학자나 법학자들인 울라마와 쉐이크들을 지도자로 선택하였다. 이런 형태의 국가들이 바로 순니 국가들이다.
순니파는 믿음과 관행에서 쉬아파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쉬아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서로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에 의하면, 이 두 파 사이에는 분명히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사이의 정치적·이념적·인종적 문제들은 가끔 전쟁과 갈등으로 귀결되었다. 비록 이 두 파는 함께 예배하고 동일한 대상을 숭배하였지만, 신학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별개의 모스크와 서로 다른 종교 의식 그리고 서로 다른 역할의 지도자를 추종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다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쉬아라는 명칭은 '쉬아트 알리'(알리의 추종자들)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명칭의 기원은 예언자 사후 후계자 선임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여기에서 쉬아란 '도당, 파벌, 분파'를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쉬아파란 무함마드가 이슬람 공동체의 초대 칼리파 또는 이맘으로 알리를 지명했다고 믿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들은 알리 이전의 세 칼리파들을 찬탈자로 부르고 있다. 쉬아파는 이슬람 신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샤하다(알라 이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이다)에 "알리는 신의 사랑을 받은 자이며, 신자들의 사령관이고, 신의 친구이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쉬아파는 비록 알리가 이슬람 공동체의 4번째 칼리파로 선출되었지만, 사실은 그가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쓰만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을 근거로 쉬아파는 알리 이전의 3명에 대한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의 후계자들에 대해서도 그 적법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 두 파는 1400년 이상 동안 이러한 견해 차이로 화해와 조정 그리고 단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에 관해, 순니파는 예언자가 원래 무지한 인물이었으며 신의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임무만을 부여받은 보통 인간이었다고 주장한 반면, 쉬아파는 예언자가 높은 학식을 소유했던 완전무결한 존재였으며, 신의 모든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의 빛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신적 속성들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이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쉬아파는 신의 빛과 신적 속성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띠마, 파띠마의 남편 알리, 그리고 이들의 자손들에게도 부여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순니파도 알리와 그의 자손들을 존중하고 있지만, 그 정도는 쉬아파와 전혀 달랐다. 순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자손들이 신적 속성들을 부여받았다는 쉬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순니파는 쉬아파가 주장하고 있는 알리와 그의 자손 중심의 이맘제도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러한 차이점도 순니와 쉬아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맘제도와 관련된 쉬아 12이맘파의 기본 논리는 12대 이맘 무함마드 알-문타자르가 873년 은둔하였다는 점과 그가 마흐디(메시아)로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12대 이맘이 마흐디로 재림함으로써 이슬람 공동체는 이슬람 쉬아의 정의와 평등, 그리고 단합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마흐디의 개념은 순니에서도 일정 부분 인정되고 있다. 중요한 차이점은 순니의 마흐디는 최후심판의 날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슬람에서 순니파는 정통파로 알려져 있다. 이 파는 예언자 사후 칼리파가 예언자 부족인 꾸라이쉬 출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공동체는 슈라(최초의 의회제도)와 합의(이즈마)를 통해 후계자를 선출하였다. 꾸란과 하디쓰에 의하면, 이렇게 선출된 지도자가 바로 이슬람 공동체를 운영할 책임을 지는 칼리파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무함마드의 지위나 위치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최후의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이슬람 공동체는 4명의 정통 칼리파에 의해 운영되었다. 1대 칼리파는 아부 바크르(632-634), 2대 칼리파는 우마르(634-644), 3대 칼리파는 우쓰만(644-656), 그리고 4대 칼리파는 알리(656-661)였다. 이들은 순나(예언자의 관행)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운영하였다. 순나를 따랐던 순니파는 이슬람 공동체의 총괄적인 법체계를 확립했으며, 이를 샤리아(이슬람 법)로 발전시켰다. 초기 4명의 칼리파 이후 이슬람 세계에는 여러 다양한 칼리파 제국과 세습 왕조가 등장하였다. 순니파에게 칼리파는 샤리아의 보호자 겸 운영자였다.
칼리파 제도는 1924년 터키의 아타 튀르크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는 곧 오스만 터키(투르크) 제국의 종말을 의미하였다. 20세기초에 등장한 이슬람 국가들은 조직과 체계를 확립하는 데 법적 근원으로 샤리아를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이들 국가들은 칼리파 대신 저명한 종교학자나 법학자들인 울라마와 쉐이크들을 지도자로 선택하였다. 이런 형태의 국가들이 바로 순니 국가들이다.
순니파는 믿음과 관행에서 쉬아파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쉬아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서로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에 의하면, 이 두 파 사이에는 분명히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사이의 정치적·이념적·인종적 문제들은 가끔 전쟁과 갈등으로 귀결되었다. 비록 이 두 파는 함께 예배하고 동일한 대상을 숭배하였지만, 신학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별개의 모스크와 서로 다른 종교 의식 그리고 서로 다른 역할의 지도자를 추종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다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쉬아라는 명칭은 '쉬아트 알리'(알리의 추종자들)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명칭의 기원은 예언자 사후 후계자 선임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여기에서 쉬아란 '도당, 파벌, 분파'를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쉬아파란 무함마드가 이슬람 공동체의 초대 칼리파 또는 이맘으로 알리를 지명했다고 믿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들은 알리 이전의 세 칼리파들을 찬탈자로 부르고 있다. 쉬아파는 이슬람 신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샤하다(알라 이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이다)에 "알리는 신의 사랑을 받은 자이며, 신자들의 사령관이고, 신의 친구이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쉬아파는 비록 알리가 이슬람 공동체의 4번째 칼리파로 선출되었지만, 사실은 그가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쓰만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을 근거로 쉬아파는 알리 이전의 3명에 대한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의 후계자들에 대해서도 그 적법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 두 파는 1400년 이상 동안 이러한 견해 차이로 화해와 조정 그리고 단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에 관해, 순니파는 예언자가 원래 무지한 인물이었으며 신의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임무만을 부여받은 보통 인간이었다고 주장한 반면, 쉬아파는 예언자가 높은 학식을 소유했던 완전무결한 존재였으며, 신의 모든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의 빛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신적 속성들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이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쉬아파는 신의 빛과 신적 속성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띠마, 파띠마의 남편 알리, 그리고 이들의 자손들에게도 부여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순니파도 알리와 그의 자손들을 존중하고 있지만, 그 정도는 쉬아파와 전혀 달랐다. 순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자손들이 신적 속성들을 부여받았다는 쉬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순니파는 쉬아파가 주장하고 있는 알리와 그의 자손 중심의 이맘제도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러한 차이점도 순니와 쉬아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맘제도와 관련된 쉬아 12이맘파의 기본 논리는 12대 이맘 무함마드 알-문타자르가 873년 은둔하였다는 점과 그가 마흐디(메시아)로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12대 이맘이 마흐디로 재림함으로써 이슬람 공동체는 이슬람 쉬아의 정의와 평등, 그리고 단합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마흐디의 개념은 순니에서도 일정 부분 인정되고 있다. 중요한 차이점은 순니의 마흐디는 최후심판의 날에 등장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