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6세
Mohamed VI
무함마드 6세(1963년 8월 21일 ~ , 아랍어: محمد السادس)는 1999년 7월 23일부터 모로코를 다스리고 있는 모로코의 현 국왕이다. 그는 1999년 7월 23일 그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교육
그는 태어남과 동시에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하산 2세는 그가 어릴 때부터 종교와 정치에 관해 교육시키고자 했다. 그는 4살부터 왕궁의 코란 학교에 다니며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초, 중등 교육을 왕립 학교에서 마치고 1985년 라바트에 있는 모하메드5세대학교에서 법학 분야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 논문은 "아랍-아프리카 연합과 국제 관계에서 모로코의 전략"이었다. 그는 또한 왕립 대학과 라바트 대학에 자주 나타났다. 같은 해인 1985년, 그는 범아랍경기대회 의장과 모로코 군 중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87년 그의 첫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88년 7월에는 공공법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11월, 그는 브뤼셀에서 유럽 위원회의 의장이었던 자크 들로르와 함께 연수를 받았습니다. 1993년 10월 29일, 그는 프랑스 니스 근처의 니스-소피아 앙티폴리스 대학교에서 'EEC와 마그레브 간의 관계'라는 논문으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심사위원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무함마드 6세는 1994년 7월 12일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같은 해 문화 고등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1999년까지 모로코군 총사령관으로 재직했다. 1999년 7월 23일, 그의 부친이 서거하면서 왕위를 계승하여 일주일 후 모로코 국왕으로 즉위했다. 2000년 6월 22일에는 모로코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사회적 개혁과 자유화
무함마드 6세가 왕좌에 오른 직후, 그는 텔레비전으로 그의 나라에 연설하며 가난과 부패를 말소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모로코의 인권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의 정책을 반대하였고, 그의 정책 중 몇몇은 근본주의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무다와나'라 불리는, 여성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새로운 가족 제도를 만들었다. 그 법은 2004년 2월 발효되었다. 2010년 12월, 위키리크스는 왕 자신이 고도의 부패 혐의가 있다는 외교 전문을 공개했다. 무함마드 6세는 하산 2세 치하에서 자행되었던 인권 유린을 조사하는 위원회인 '공정화해위원회(IER)'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위원회는 무함마드가 왕좌에 오른 1999년까지의 인권 침해에 대한 보고를 할 수 없었다. 이러한 방침은 민주주의를 향한 진전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았지만, 인권 유린의 가해자를 밝힐 수 없기에 비판받았다. 모로코의 인권 단체들에 따르면 학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2011년 모로코의 시위는 부패,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 그리고 경제 위기로 인해 자극받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국왕은 시위대에 전진된 개혁을 약속하며, 2011년 3월 9일 연설에서 사법부의 독립과 의회의 견제 능력 강화, 개헌위원회 구성 및 6월까지 신헌법 초안 마련을 선언했다.
7월 1일, 유권자들은 왕의 정치 개혁안을 승인했다.
- 베르베르어를 아랍어와 더불어 공식어로 지정한다.
- 국가는 소수부족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 왕은 다수당으로부터 총리를 지명할 의무를 지닌다. 이전에는 어느 정당도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은 경우, 기술관료를 총리로 지명할 수 있다.
- 왕은 더 이상 신성하진 않으나 그의 온전함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 대사, 공기업 최고 경영자, 지방 단체장 등의 고위 공무원은 국왕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임명되던 과거와 달리, 총리가 임명에 개입한다.
- 총리는 정부의 수반이며 국회 해산권을 갖는다.
- 왕을 대신하여 총리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각료회의를 주재한다.
- 의회는 왕이 갖고 있던 사면권을 갖는다.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되며, 왕이 독립을 보장한다.
-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시민 및 사회적 권리를 갖는다. 이전에는 1996년 헌법에 의해 부여된 정치적 평등만 보장되었다.
- 왕은 군 통수권을 비롯하여 외교권, 사법권, 총리 지명 및 탄핵권, 종교 관련 권한을 갖는다.
- 모든 시민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닌다.
Mohamed VI
무함마드 6세(1963년 8월 21일 ~ , 아랍어: محمد السادس)는 1999년 7월 23일부터 모로코를 다스리고 있는 모로코의 현 국왕이다. 그는 1999년 7월 23일 그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교육
그는 태어남과 동시에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하산 2세는 그가 어릴 때부터 종교와 정치에 관해 교육시키고자 했다. 그는 4살부터 왕궁의 코란 학교에 다니며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초, 중등 교육을 왕립 학교에서 마치고 1985년 라바트에 있는 모하메드5세대학교에서 법학 분야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 논문은 "아랍-아프리카 연합과 국제 관계에서 모로코의 전략"이었다. 그는 또한 왕립 대학과 라바트 대학에 자주 나타났다. 같은 해인 1985년, 그는 범아랍경기대회 의장과 모로코 군 중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87년 그의 첫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88년 7월에는 공공법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11월, 그는 브뤼셀에서 유럽 위원회의 의장이었던 자크 들로르와 함께 연수를 받았습니다. 1993년 10월 29일, 그는 프랑스 니스 근처의 니스-소피아 앙티폴리스 대학교에서 'EEC와 마그레브 간의 관계'라는 논문으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심사위원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무함마드 6세는 1994년 7월 12일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같은 해 문화 고등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1999년까지 모로코군 총사령관으로 재직했다. 1999년 7월 23일, 그의 부친이 서거하면서 왕위를 계승하여 일주일 후 모로코 국왕으로 즉위했다. 2000년 6월 22일에는 모로코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사회적 개혁과 자유화
무함마드 6세가 왕좌에 오른 직후, 그는 텔레비전으로 그의 나라에 연설하며 가난과 부패를 말소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모로코의 인권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의 정책을 반대하였고, 그의 정책 중 몇몇은 근본주의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무다와나'라 불리는, 여성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새로운 가족 제도를 만들었다. 그 법은 2004년 2월 발효되었다. 2010년 12월, 위키리크스는 왕 자신이 고도의 부패 혐의가 있다는 외교 전문을 공개했다. 무함마드 6세는 하산 2세 치하에서 자행되었던 인권 유린을 조사하는 위원회인 '공정화해위원회(IER)'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위원회는 무함마드가 왕좌에 오른 1999년까지의 인권 침해에 대한 보고를 할 수 없었다. 이러한 방침은 민주주의를 향한 진전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았지만, 인권 유린의 가해자를 밝힐 수 없기에 비판받았다. 모로코의 인권 단체들에 따르면 학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2011년 모로코의 시위는 부패,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 그리고 경제 위기로 인해 자극받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국왕은 시위대에 전진된 개혁을 약속하며, 2011년 3월 9일 연설에서 사법부의 독립과 의회의 견제 능력 강화, 개헌위원회 구성 및 6월까지 신헌법 초안 마련을 선언했다.
7월 1일, 유권자들은 왕의 정치 개혁안을 승인했다.
- 베르베르어를 아랍어와 더불어 공식어로 지정한다.
- 국가는 소수부족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 왕은 다수당으로부터 총리를 지명할 의무를 지닌다. 이전에는 어느 정당도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은 경우, 기술관료를 총리로 지명할 수 있다.
- 왕은 더 이상 신성하진 않으나 그의 온전함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 대사, 공기업 최고 경영자, 지방 단체장 등의 고위 공무원은 국왕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임명되던 과거와 달리, 총리가 임명에 개입한다.
- 총리는 정부의 수반이며 국회 해산권을 갖는다.
- 왕을 대신하여 총리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각료회의를 주재한다.
- 의회는 왕이 갖고 있던 사면권을 갖는다.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되며, 왕이 독립을 보장한다.
-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시민 및 사회적 권리를 갖는다. 이전에는 1996년 헌법에 의해 부여된 정치적 평등만 보장되었다.
- 왕은 군 통수권을 비롯하여 외교권, 사법권, 총리 지명 및 탄핵권, 종교 관련 권한을 갖는다.
- 모든 시민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닌다.
한편, 모로코에서는 ‘아랍의 봄’ 이후 최악의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으며 국내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하나인 베르베르족이 주로 거주하는 리프 지역(리프족 참조)에서 일어났다. 2016년 10월, 알호세이미아에서 한 현지 생선 장수가 쓰레기 수거차에서 생선을 건지려다 깔려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시위가 시작되었다. 경찰은 해당 생선이 불법으로 조달된 것이라며 압수했었다. 많은 이들에게 이 사건은 정부가 광범위한 빈곤을 조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졌다. 시위대는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시위는 수개월간 이어졌다. 2017년 말에는 열악한 작업 환경으로 인해 광부들이 사망하자 제라다 시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두 시위 운동 모두 무력 진압과 조직자 체포를 통해 억압되었으나, 정부는 개발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소규모 정당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의회는 2021년, 한 선거구에서 두 석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정당별 득표율 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한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PJD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 새로운 의석 배분 방식은 유권자 동원력이 뛰어난 정당들이 의회를 장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이러한 변화가 의회의 구성 다양성 증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한편, 코로나19 확산 대응은 PJD 주도의 의회가 아닌 왕실이 주도했는데, 이는 9월 선거 당시 유권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의석 배분 방식 때문에 PJD가 소수의 의석을 잃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실제로는 100석 이상을 잃었다. 왕실 친화 성향의 '독립자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des Indépendants, RNI)'이 최대 정당이 되었으며, 당 대표인 아지즈 아칸누쉬가 총리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