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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형성과 정통 칼리프

이슬람의 형성

무함맏은 메디나에서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만들었는데, 이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부족이나 씨족으로 구성되지않는 최초로 생성된 이념 공동체로 무함맏은 이 공동체를 세우고 아라비아 반도에서 신의 사도로서, 중재자로서, 군사령관으로서 제정 일치의 모든 권한을 쥔 여느 부족장들과는 다른 강력한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메디나의 유대교도를 몰아내고, 메카와 세 번의 전쟁 후에 무슬림군을 이끌고서 630년에 메카를 평화적으로 무혈 점령한다. 그리고 나서 632년 그가 죽을 때까지 이슬람 을 전하는 예언자로서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을 세상에 남겼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도자로서 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 공동체를 실질적 정치 세력으로 아라비아 반도 내에 형성시켜 놓는다.

정통 칼리파 시대

무함마드는 신도들에게 꾸란과 이슬람 공동체의식, 무슬림으로서의 모범적인 생활방법을 계시하고 세상을 뜨고. 그러나 그의 사후에 이슬람 공동체는 아랍 부족들의 이반에 따라 한때 붕괴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그의 후계자로서 칼리파로 뽑힌 아부 바크르의 노력으 로 재통일되었다. 제 이대 칼리파 우마르 때에는 대정복이 개시되었고, 한 순간에 이슬 람 국가의 판도는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동서로 확대되면서 제국으로 변모하였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아랍 부족들로 이루어진 이슬람 전사단이었다. 그 후 칼리파의 자리는 우스만에서 알리로 계승되었고, 이슬람 공동체는 다시 내란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것은 알리와 우마이야가의 무아위야의 지도권 다툼이었으며, 이것에 깊이 관련되어 있던 것이 카와리즈파이다. 그들은 이슬람 공동체가 지닌 윤리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과격파로 공동체가 급속한 확산에 의하여 세속화되는 것에 종교적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무아위야 및 그와 타협한 알리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규탄하고 그들 양자와 싸웠다. 결국 661년 알리가 그들에 의하여 암살 당하고 정통 칼리파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그후 90년 동안 공동체의 지도권은 우마이야조가 독점하게 되었다. 이런 이슬람 체제 (이를 인정하는 다수파를 순니파라고 부른다)에 대하여 공동체의 지도권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피를 받은 알리의 후예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시아파이며, 이들도 우마이야조를 비(非)이슬람 적이라 비난하며 카와리즈파와 같이 우마이야조에 대해서 무력 저항을 계속했다.

우마이야조 시대(661∼750)

반(反) 우마이야조의 움직임에 대하여 우마이야조는 신앙은 행위와 관계가 없다는 무르지이파의 주장에서 지배의 정당성을 찾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엄한 탄압으로 맞섰다.움마이야조 하에서도 제국의 확장은 계속되었지만 영토의 확장이 곧 이슬람화로 연결 지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의 정치적 지배를 받아들이는 피정복민은 일정한 조건 아래 <이슬람의 평화>와 신앙의 자유를 향유했다. 따라서 이슬람의 지배영역은 우마이야조 말기까지 이미 서쪽은 아프리카의 전 비잔틴령과 스페인까지 이르고, 동쪽은 중앙아시아와 인더스강 유역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국의 확대 에도 불구하고 우마이야조하의 이슬람 공동체는 평온하지 못했다. 정부의 세속적 성격이나 아랍인 우위의 정책은 비(非)아랍 무슬림인 마왈리와 원리주의적인 신도의 불만과 반발을 유발시켰다. 이것은 시아파와 카와리즈파의 운동과 결부되었고, 나아가서는 아랍 부족대립과도 연결되어 반 정부운동을 일으켰다. 우마이야조의 칼리파들은 이슬람 공동체를 새로운 환경 속에서 확대 유지, 발전시키는 데에 힘썼으나 이슬람적으로 다지는 데는 실패했고, 또 무엇이 이슬람적인가 하는 것에 관한 기준도 미처 확립하지 못했고 이와 같은 불안정요인을 최대한 결집시켜 가며 오랜 노력 결과 반란에 성공하여 750년 우마이야조를 쓰러뜨리고 압바스조를 세웠다.

압바스조 시대(750∼1258)

이슬람 제국의 우두머리가 우마이야조에서 압바스조로 바뀌어진 것은 혁명이었다. 그것 은 궁전의 음모나 쿠데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혁명적 조직과 선전에 의하여 달 성된 것이다. 이때부터 제국은 아랍계이건 비(非)아랍계이건 무슬림이면 누구나 똑같은 권한을 부여하여 주었다. 압바스조는 국가 통일의 원리가 이슬람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때까지 민간학자들 사이에서 정비되어 가고 있던 이슬람법에서 국가통치의 기초를 찾는다. 그리하여 쿠라이쉬족 출신인 칼리파가 다민족적 공동체를 하나의 법 밑에서 단일국가로서 지배하는 이상에 가까운 형태를 실현했다. 이렇게 해서 우마이야조 하에서 세속적 성격이 강하며 아랍적인 제국은 압바스조 하에서 진짜 이슬람 제국으로 변모했다. 압바스조의 칼리파는 실질적인 권력의 바탕을 정규군에 두었고, 권력의 행사는 봉급 생활자인 관료 기구를 통하여 행사했던 전제군주였다. 따라서 그의 권위는 아랍 부족의 지지하던 우마이야 칼리파보다 훨씬 높았다.

압바스조 하의 이슬람 제국은 다인종 국가로서 농업과 상업과 같은 평화시의 경제에 바탕을 둔 국가였다. 제국의 경제 규모는 우마이야조 시대에 비해 훨씬 대형화되었으나 정복사업의 중지로 더 이상 크게 확장되지 않았다. 압바스조가 등장하고 우마이야조가 무너지는 과도기를 틈타 서쪽 변방 지역인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점차 분리 현상을 보이고 있었으나, 제국의 중심부인 중근동 지역은 그나마 통일은 지탱하여 9세기 중 엽까지 제국의 모습은 유지했다.

그러나 제국의 영토가 너무나 크고 중앙 정부의 내분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제국은 급 격히 아랍, 페르시아 및 터키인의 영주가 다스리는 지역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허약한 중앙 정부는 이 현상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945년 시아파인 부와이흐가가 바그다드를 점령하자 칼리파는 어떤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압바스 제국은 1258년까지 유지되다가, 비(非)무슬림인 몽골의 홀라구에 의해 바그다드가 함락됨으로 써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에도 이슬람 세계에 칼리파를 지칭하는 사람은 있었으나, 이름에 걸맞은 실체를 가지지 못하였고, 이슬람 법학자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국이 분열과 쇠퇴를 거듭하는 동안에 지방에 따라서는 유능한 통치자가 출현하여 경제적, 문화적 활동을 장려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900년경부터 1250년경까지 이슬람 문명의 절정기를 만들어냈다. 또한 제국이 사라진 후에도 이슬람은 확산을 거듭하여 18 세기에 유럽이 이슬람 세계로 진출하여 올 때까지 서쪽으로는 대서양 연안, 북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비인 앞, 남쪽으로는 중부 아프리카, 동쪽으로는 필리핀까지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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