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BER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족-
북아프리카에 흩어져 살고 있는 베르베르족은 자신들의 문화적 동질성을 재확인하고 되살리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보다 폭넓은 정의와 정치적 권리를 추구하는 데 필연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1995년 알제리에서 거둔 베르베르족의 승리는 그 종족의 미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베르베르족의 현재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원주민의 후손인 베르베르족이 세운 초기 왕국은 BC 5~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르베르족의 문자 '티피나그(tifinagh)'는 고대 리비아의 베르베르어에서 파생되었으며, 이 언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한다. 외딴 지역에 거주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고유의 언어와 예술, 그리고 생활 방식을 지켜온 베르베르족은 오늘날 외부에서 붙여 준 '베르베르'라는 명칭보다는 예전 이름인 '막시'에서 유래한 '자유인'이라는 의미의 '아마지그'(복수형은 '이마지겐')라는 호칭을 더 선호한다.
베르베르족의 상당수는 모로코(전체 인구의 30~35%)와 알제리(약 15%)에 거주한다. (여기서 인용한 통계는 인구 조사와 학술 연구에서 나온 수치이며, 일부 추계는 이보다 높을 수 있다.) 베르베르어를 사용하는 모로코 주민 900만여 명은 주로 리프 산맥과 아틀라스 산맥에 거주한다. 알제리에 거주하는 500만 명의 베르베르인 중 2/3는 카빌리 부족에 속하며, 특히 드쥐르드쥐라 산맥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오레스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샤위아 부족과 사하라 북부의 음자브인 등도 베르베르족에 속한다. 베르베르족의 또 다른 주요 부족인 투아레그족은 니제르(95만 명)와 말리(66만 명) 등 사하라-사헬 지역의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상당수는 알제리 남부와 리비아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투아레그족의 곤경 1990년 니제르와 말리의 투아레그족이 봉기를 일으키고, 이에 맞서 정부가 집단 학살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난민이 부르키나파소, 알제리, 모리타니, 리비아 등으로 유입되었다. 이러한 폭력 사태는 예로부터 이어져 온 토지 분쟁과 베르베르족이 느끼는 경제적 차별, 정치적 소외감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1994년 중반, 말리 정부와 아자와드연합운동전선(Unified Movements and Fronts of Azawad/UMFA)이 협약을 체결한 이후, 투아레그족은 어느 정도 자치를 허용받았고, 이를 통해 지역 개발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무장 투쟁을 벌여 온 아자와드 아랍 이슬람교 전선(Arab Islamic Front of Azawad) 역시 1995년 6월부터 평화 정착 움직임에 가세했다.
니제르 분쟁은 1995년 4월, 정부 당국과 무장 저항 기구(Organization of the Armed Resistance)가 평화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종식되었다. 이 협정은 북부 투아레그족 거주 지역의 자치를 확대하고 경제 개발의 계기를 제공했다. 니제르에서는 산발적인 폭력 사태가 이어졌으나, 평화가 간신히 유지되면서 1995년 12월에는 일부 난민들이 귀향하기 시작했다.
마그레브 베르베르족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베르베르 국가 건설의 실패는 사회·문화적 분열을 야기하고 폭력과 동요를 조장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모로코에서는 베르베르족의 주체성을 찾는 움직임이 알제리에서만큼 활발하거나 선동적이지 않았지만, 1994년 5월 베르베르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고, 그 결과 여러 명의 지도자가 투옥되었다. 하산 2세 모로코 국왕은 1995년에 들어서서 베르베르어로 진행되는 뉴스와 교육 프로그램의 도입을 허용함으로써 이 사태를 무마했다.
알제리의 베르베르족은 1995년 5월, 정부에 아마지그어 복원과 촉진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포고령을 발표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승리는 베르베르인이 이끄는 두 정당인 사회주의 세력 전선(Socialist Forces Front/FFS)과 문화 민주주의 연대당(Rally for Culture and Democracy), 그리고 '베르베르 문화 운동'이라는 단체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FFS는 1995년 초 알제리의 민주주의 복원을 촉구한 로마 회담에 서명한 야당 중 하나였다. 이 회담에서 FFS는 알제리 구성원 중 하나로 아마지그(베르베르족)를 인정하고, 아랍계 이슬람교와 함께 회담에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협상을 벌였다.
지리적으로 흩어져 사는 베르베르족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들이 독립국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표현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베르베르족이 속한 각국에서 정치적 소외와 소수민족으로서의 권리 찾기에 실패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1994년 8월 프랑스 두아르네에서 열린 베르베르족 축제에서 1996년에 첫 아마지그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을 보면, 베르베르족의 자의식은 국경을 넘어 성장하고 있다.
현재 대다수는 스페인과 프랑스 등지에서 이민 노동자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착 농민으로 남아 겨울에는 저지대를 경작하고 여름에는 산악 지역에서 가축을 키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사막의 구릉지나 오아시스에 사는 종속민에게서 채소를 공급받으며 일 년 내내 주기적으로 이동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부족도 있다. 주요 작물로는 밀, 보리, 과일, 채소, 땅콩, 올리브 등이 있으며, 주로 소, 양, 염소를 방목하고 이 밖에도 운송 및 교통수단으로 황소, 노새, 낙타, 말을 기른다. 정착 농민들은 돌로 만든 단층집에 살며, 계절마다 옮겨 다니는 유목민들은 흙으로 방어 및 저장용 요새를 만들고 양털로 된 천막에서 생활한다. 그릇을 만들거나 천을 짜는 등 가정의 생산 활동은 여성의 몫이다.
알제리와 오아틀라스 산맥의 독립 촌락에서 베르베르족의 가장 단순한 정치 조직을 볼 수 있다. 모든 명망 있는 성인 남성이 마을 광장에 모여 여는 회의, 즉 '자마아'(jamā'ah)가 그것이다. 전적으로 유목하는 부족들은 종신 족장과 위원을 선출하는 반면, 계절이 바뀔 때만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이동을 지휘할 여름 족장을 매년 선출한다. 모든 베르베르족 집단에는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1명 이상의 신분이 있다. 이 신분은 예언자 마호메트나 다른 성인의 후예이며, 신성하기 때문에 재앙을 받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베르베르족은 이슬람교도이다.
북아프리카에 흩어져 살고 있는 베르베르족은 자신들의 문화적 동질성을 재확인하고 되살리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보다 폭넓은 정의와 정치적 권리를 추구하는 데 필연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1995년 알제리에서 거둔 베르베르족의 승리는 그 종족의 미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베르베르족의 현재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원주민의 후손인 베르베르족이 세운 초기 왕국은 BC 5~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르베르족의 문자 '티피나그(tifinagh)'는 고대 리비아의 베르베르어에서 파생되었으며, 이 언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한다. 외딴 지역에 거주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고유의 언어와 예술, 그리고 생활 방식을 지켜온 베르베르족은 오늘날 외부에서 붙여 준 '베르베르'라는 명칭보다는 예전 이름인 '막시'에서 유래한 '자유인'이라는 의미의 '아마지그'(복수형은 '이마지겐')라는 호칭을 더 선호한다.
베르베르족의 상당수는 모로코(전체 인구의 30~35%)와 알제리(약 15%)에 거주한다. (여기서 인용한 통계는 인구 조사와 학술 연구에서 나온 수치이며, 일부 추계는 이보다 높을 수 있다.) 베르베르어를 사용하는 모로코 주민 900만여 명은 주로 리프 산맥과 아틀라스 산맥에 거주한다. 알제리에 거주하는 500만 명의 베르베르인 중 2/3는 카빌리 부족에 속하며, 특히 드쥐르드쥐라 산맥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오레스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샤위아 부족과 사하라 북부의 음자브인 등도 베르베르족에 속한다. 베르베르족의 또 다른 주요 부족인 투아레그족은 니제르(95만 명)와 말리(66만 명) 등 사하라-사헬 지역의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상당수는 알제리 남부와 리비아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투아레그족의 곤경 1990년 니제르와 말리의 투아레그족이 봉기를 일으키고, 이에 맞서 정부가 집단 학살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난민이 부르키나파소, 알제리, 모리타니, 리비아 등으로 유입되었다. 이러한 폭력 사태는 예로부터 이어져 온 토지 분쟁과 베르베르족이 느끼는 경제적 차별, 정치적 소외감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1994년 중반, 말리 정부와 아자와드연합운동전선(Unified Movements and Fronts of Azawad/UMFA)이 협약을 체결한 이후, 투아레그족은 어느 정도 자치를 허용받았고, 이를 통해 지역 개발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무장 투쟁을 벌여 온 아자와드 아랍 이슬람교 전선(Arab Islamic Front of Azawad) 역시 1995년 6월부터 평화 정착 움직임에 가세했다.
니제르 분쟁은 1995년 4월, 정부 당국과 무장 저항 기구(Organization of the Armed Resistance)가 평화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종식되었다. 이 협정은 북부 투아레그족 거주 지역의 자치를 확대하고 경제 개발의 계기를 제공했다. 니제르에서는 산발적인 폭력 사태가 이어졌으나, 평화가 간신히 유지되면서 1995년 12월에는 일부 난민들이 귀향하기 시작했다.
마그레브 베르베르족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베르베르 국가 건설의 실패는 사회·문화적 분열을 야기하고 폭력과 동요를 조장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모로코에서는 베르베르족의 주체성을 찾는 움직임이 알제리에서만큼 활발하거나 선동적이지 않았지만, 1994년 5월 베르베르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고, 그 결과 여러 명의 지도자가 투옥되었다. 하산 2세 모로코 국왕은 1995년에 들어서서 베르베르어로 진행되는 뉴스와 교육 프로그램의 도입을 허용함으로써 이 사태를 무마했다.
알제리의 베르베르족은 1995년 5월, 정부에 아마지그어 복원과 촉진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포고령을 발표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승리는 베르베르인이 이끄는 두 정당인 사회주의 세력 전선(Socialist Forces Front/FFS)과 문화 민주주의 연대당(Rally for Culture and Democracy), 그리고 '베르베르 문화 운동'이라는 단체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FFS는 1995년 초 알제리의 민주주의 복원을 촉구한 로마 회담에 서명한 야당 중 하나였다. 이 회담에서 FFS는 알제리 구성원 중 하나로 아마지그(베르베르족)를 인정하고, 아랍계 이슬람교와 함께 회담에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협상을 벌였다.
지리적으로 흩어져 사는 베르베르족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들이 독립국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표현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베르베르족이 속한 각국에서 정치적 소외와 소수민족으로서의 권리 찾기에 실패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1994년 8월 프랑스 두아르네에서 열린 베르베르족 축제에서 1996년에 첫 아마지그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을 보면, 베르베르족의 자의식은 국경을 넘어 성장하고 있다.
현재 대다수는 스페인과 프랑스 등지에서 이민 노동자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착 농민으로 남아 겨울에는 저지대를 경작하고 여름에는 산악 지역에서 가축을 키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사막의 구릉지나 오아시스에 사는 종속민에게서 채소를 공급받으며 일 년 내내 주기적으로 이동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부족도 있다. 주요 작물로는 밀, 보리, 과일, 채소, 땅콩, 올리브 등이 있으며, 주로 소, 양, 염소를 방목하고 이 밖에도 운송 및 교통수단으로 황소, 노새, 낙타, 말을 기른다. 정착 농민들은 돌로 만든 단층집에 살며, 계절마다 옮겨 다니는 유목민들은 흙으로 방어 및 저장용 요새를 만들고 양털로 된 천막에서 생활한다. 그릇을 만들거나 천을 짜는 등 가정의 생산 활동은 여성의 몫이다.
알제리와 오아틀라스 산맥의 독립 촌락에서 베르베르족의 가장 단순한 정치 조직을 볼 수 있다. 모든 명망 있는 성인 남성이 마을 광장에 모여 여는 회의, 즉 '자마아'(jamā'ah)가 그것이다. 전적으로 유목하는 부족들은 종신 족장과 위원을 선출하는 반면, 계절이 바뀔 때만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이동을 지휘할 여름 족장을 매년 선출한다. 모든 베르베르족 집단에는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1명 이상의 신분이 있다. 이 신분은 예언자 마호메트나 다른 성인의 후예이며, 신성하기 때문에 재앙을 받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베르베르족은 이슬람교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