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니파와 쉬아파
순니파와 쉬아파 사이의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이슬람 법학인 피끄흐의 영역이었다. 순니파는 하나피파, 한발리파, 말리키파, 샤피이파 등 정통 4대 법학파를 인정한 반면, 쉬아파는 6대 이맘 자으파르 알-싸디끄(d.765)가 편집하고 성문화한 "자으파르 법전"만을 인정하고 있다. 쉬아파는 경험이 많고 학식이 풍부한 무즈타히드(학식과 덕망을 갖춘 신학자 또는 울라마)들의 이즈티하드(개인의 독자적 판단이나 이성적 판단)를 최우선으로 인정하였으며, 순니파의 4가지 법적 근원인 꾸란, 순나, 이즈마(합의), 끼야스(유추)도 인정하였다. 더욱이 순니파와 쉬아파는 결혼, 이혼, 상속에 관련된 법적 판단에서도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예를 들면, 12대 이맘파는 일시적 결혼인 무트아를 인정하였던 반면, 순니파는 결혼의 기간을 정해놓는 계약 결혼을 죄악으로 간주하였다. 한편 쉬아파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혼 권리를 순니파 보다 훨씬 제한적으로 운영하였다. 또한 여성의 상속권은 순니 법전에서 보다 쉬아 자으파르 법전에서 훨씬 관대하고 광범위하게 인정되었다.
순니와 쉬아의 종교적 관행 중 또 다른 차이점은 타끼야(믿음의 가장) 관행이었다. 쉬아파는 정치적·종교적 적대 세력의 탄압과 억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종교적·이념적 믿음을 숨길 수 있도록 하였다. 무슬림 세계에서 타끼야 관행은 쉬아에 대한 1400년 동안의 탄압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순니파와 쉬아파는 종교적 관행과 전통에서도 차이를 나타냈다. 쉬아는 순니 보다 훨씬 많은 종교 의식을 실행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순니 원리주의자들은 쉬아의 성인 숭배 사상과 의식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쉬아의 성인 숭배 의식들 중에는 예언자 무함마드 가문(아흘 알-바이트) 출신의 성인들에 대한 숭배 의식과 이라크, 이란, 그리고 시리아의 성인 묘소에 대한 방문과 순례 의식이 포함되었다. 이란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 이맘 알리, 이맘 후사인, 그리고 카르발라 전투 등에 대한 사진들이 공공연히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순니 세계에서는 이러한 사진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순니파와 쉬아파는 예배 의식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순니파는 하루 5번의 예배를 행하고 있으나, 쉬아파는 하루 5번의 예배를 3차례(새벽과 일출 사이, 정오와 일몰 사이, 일몰과 한밤중 사이)로 나누어 실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두 파의 예배 방식에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순니파는 예배 시 두 팔을 앞으로 포개는 반면, 쉬아파는 두 팔을 포개지 않고 밑으로 내려뜨린다.
쉬아파와 순니파는 종교 축제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순니파는 680년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조 칼리파 야지드에 의해 알리의 아들 후사인이 순교 당한 달인 무하르람을 이슬람력의 첫 번째 달로 기념하고 있는 반면, 쉬아 12이맘파는 그 당시 후사인의 도움 요청을 거부하고 그를 구출하지 못한 것을 참회하기 위해 가슴을 후려치는 의식(마아탐)과 자기 채찍 의식을 통해 무하르람 10일을 최고의 애도일(아슈라)로 간주하고 있다. 쉬아파는 이러한 극적인 참회 의식(타으지야)을 통해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에게 쉬아의 순교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려 하고 있다. 쉬아파는 이런 참회 의식을 행하면 이맘 후사인이 최후심판의 날에 중재자로 등장하여 자신들을 천국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순니파는 쉬아파가 알리와 후세인에 대한 그릇된 종교 의식을 강요하였다고 비난하였다.
비록 순니파와 쉬아파 사이에, 순니의 4대 법학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많은 차이점들이 발견되었지만,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이 두 파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훨씬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의 가장 기본적인 종교적 믿음과 교리를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슬람 분파들은 이슬람이 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신의 안내와 축복을 제공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현대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부흥과 원리주의의 부활이 순니나 쉬아 세계를 막론하고 전세계 이슬람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한편 기독교의 수백의 분파를 추정한다면 이슬람에서의 단일성의 돋보이는 부분이다
순니와 쉬아의 종교적 관행 중 또 다른 차이점은 타끼야(믿음의 가장) 관행이었다. 쉬아파는 정치적·종교적 적대 세력의 탄압과 억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종교적·이념적 믿음을 숨길 수 있도록 하였다. 무슬림 세계에서 타끼야 관행은 쉬아에 대한 1400년 동안의 탄압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순니파와 쉬아파는 종교적 관행과 전통에서도 차이를 나타냈다. 쉬아는 순니 보다 훨씬 많은 종교 의식을 실행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순니 원리주의자들은 쉬아의 성인 숭배 사상과 의식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쉬아의 성인 숭배 의식들 중에는 예언자 무함마드 가문(아흘 알-바이트) 출신의 성인들에 대한 숭배 의식과 이라크, 이란, 그리고 시리아의 성인 묘소에 대한 방문과 순례 의식이 포함되었다. 이란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 이맘 알리, 이맘 후사인, 그리고 카르발라 전투 등에 대한 사진들이 공공연히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순니 세계에서는 이러한 사진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순니파와 쉬아파는 예배 의식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순니파는 하루 5번의 예배를 행하고 있으나, 쉬아파는 하루 5번의 예배를 3차례(새벽과 일출 사이, 정오와 일몰 사이, 일몰과 한밤중 사이)로 나누어 실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두 파의 예배 방식에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순니파는 예배 시 두 팔을 앞으로 포개는 반면, 쉬아파는 두 팔을 포개지 않고 밑으로 내려뜨린다.
쉬아파와 순니파는 종교 축제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순니파는 680년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조 칼리파 야지드에 의해 알리의 아들 후사인이 순교 당한 달인 무하르람을 이슬람력의 첫 번째 달로 기념하고 있는 반면, 쉬아 12이맘파는 그 당시 후사인의 도움 요청을 거부하고 그를 구출하지 못한 것을 참회하기 위해 가슴을 후려치는 의식(마아탐)과 자기 채찍 의식을 통해 무하르람 10일을 최고의 애도일(아슈라)로 간주하고 있다. 쉬아파는 이러한 극적인 참회 의식(타으지야)을 통해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에게 쉬아의 순교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려 하고 있다. 쉬아파는 이런 참회 의식을 행하면 이맘 후사인이 최후심판의 날에 중재자로 등장하여 자신들을 천국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순니파는 쉬아파가 알리와 후세인에 대한 그릇된 종교 의식을 강요하였다고 비난하였다.
비록 순니파와 쉬아파 사이에, 순니의 4대 법학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많은 차이점들이 발견되었지만,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이 두 파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훨씬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의 가장 기본적인 종교적 믿음과 교리를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슬람 분파들은 이슬람이 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신의 안내와 축복을 제공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현대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부흥과 원리주의의 부활이 순니나 쉬아 세계를 막론하고 전세계 이슬람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한편 기독교의 수백의 분파를 추정한다면 이슬람에서의 단일성의 돋보이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