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과 분쟁 속의 역사
모로코는 문화가 강한 역사를 간직한 고대 국가입니다. 고대 문화는 수세기 동안 모로코의 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다양한 다른 고대 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로코는 정복과 분쟁의 역사속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았고, 현재까지 세계에서 유래 없는 독립국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민 대부분(98.7%)은 이슬람교도이며, 나머지 인구는 기독교나 유대교 인들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모로코인들은 베르베르 족과 아랍계 조상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모로코 역사속에는 소수의 유대인과 흑인 아프리카인들도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모로코의 원래 주민들이 베르베르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큰 부족 중심으로 모여 살며, 주로 농축업 위주로 사회를 형성했지만 국가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베르베르 부족은 지도자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했습니다. 인구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여러 갈래의 통일된 부족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최초의 외부 공격자들은 기원전 12세기에 나타난 페니키아 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르베르 인들을 정복하기 보다는 모로코의 지중해-대서양 연안을 따라 여러군데에 해안 정착촌을 만들고 베르베르 부족들과 상호간 거래하며 지중해 전지역을 대상으로 해상무역을 더욱더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나중에 카르타고 사람들이 북아프리카를 정복했습니다.
수세기 후에 로마인들이 포에니 전쟁을 끝으로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후 기독교가 베르베르 인들에게 점차 전파되기 시작했고 곧이어 모로코에서 몇몇 로마 군사요새가 세워졌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 전지역을 정복했고 곧이어 이슬람교가 베르베르 인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그 당시 모로코 몇몇 지역에 유대인들이 소규모 집단 사회를 이루며 주로 상업에 종사했습니다. 이후, 중세기때 유럽에서 십자전쟁으로 인해 스페인에서 쫓겨온 유대인과 무어 인들이 모로코에 대거 정착하면서 1579년-1603년 사이에 모로코는 한때 최고 번성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각자 문화와 예술을 가져왔고 결국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많은 문화유산을 모로코에 남겨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공격을 받아 모로코의 몇몇 해안 도시들이 그들의 점령지로 되었습니다.
모로코는 1700년까지 포르투갈과 여러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포르투갈이 점령하던 거의 모든 해안 도시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1904년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으로부터 무력으로 점령되면서 스페인 령과 프랑스 령으로 각각 나뉘어졌고 프랑스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1950년 모로코 술탄은 프랑스에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프랑스가 초기에는 거부했으나 모로코는 끈질긴 독립투쟁을 이어간 끝에 드디어 1957년 술탄 모하메드 5세가 왕좌를 되찾았고 드디어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서사하라에서 자국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았습니다. 1974년 Hassan 2세 국왕은 스페인으로부터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모로코 전국 각지에서 시민 35만명을 모아서 서부 사하라에서 평화적인 녹색행진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나 국제 사법재판소는 모로코의 서사하라에 대한 소유권 청구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핫산 2세 국왕은 스페인과 모리타니아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여 서사하라 지역을 모로코-스페인-모리타니아 3개국이 관할할 것에 잠정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협상에서 배제된 알제리아의 지원으로 서사하라 사막에 거주하는 일부 부족들이 Polisaro 전선(사하라 분리 단체)을 결성해서 오늘날까지 이 지역은 영토분쟁 지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재 Polisario는 서부 사하라 내륙에 위치한 Tindouf 지역을 거점을 둔 대규모 난민촌에 살고 있습니다. 유엔은 이러한 상황에 3 나라간의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 중입니다.
모로코와 알제리아는 유엔 중재로 수차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서로의 상반된 입장차 때문에 아직까지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1999년 7월 23일 핫산 2세 국왕이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아랍 세계의 현대사에 있어 가장 오래동안(38년간) 군림한 군주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재 핫산 2세 왕의 아들 모하메드 6세가 모로코 알라위 왕조 18번째 왕으로 통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로코는 문화가 강한 역사를 간직한 고대 국가입니다. 고대 문화는 수세기 동안 모로코의 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다양한 다른 고대 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로코는 정복과 분쟁의 역사속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았고, 현재까지 세계에서 유래 없는 독립국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민 대부분(98.7%)은 이슬람교도이며, 나머지 인구는 기독교나 유대교 인들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모로코인들은 베르베르 족과 아랍계 조상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모로코 역사속에는 소수의 유대인과 흑인 아프리카인들도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모로코의 원래 주민들이 베르베르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큰 부족 중심으로 모여 살며, 주로 농축업 위주로 사회를 형성했지만 국가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베르베르 부족은 지도자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했습니다. 인구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여러 갈래의 통일된 부족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최초의 외부 공격자들은 기원전 12세기에 나타난 페니키아 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르베르 인들을 정복하기 보다는 모로코의 지중해-대서양 연안을 따라 여러군데에 해안 정착촌을 만들고 베르베르 부족들과 상호간 거래하며 지중해 전지역을 대상으로 해상무역을 더욱더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나중에 카르타고 사람들이 북아프리카를 정복했습니다.
수세기 후에 로마인들이 포에니 전쟁을 끝으로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후 기독교가 베르베르 인들에게 점차 전파되기 시작했고 곧이어 모로코에서 몇몇 로마 군사요새가 세워졌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 전지역을 정복했고 곧이어 이슬람교가 베르베르 인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그 당시 모로코 몇몇 지역에 유대인들이 소규모 집단 사회를 이루며 주로 상업에 종사했습니다. 이후, 중세기때 유럽에서 십자전쟁으로 인해 스페인에서 쫓겨온 유대인과 무어 인들이 모로코에 대거 정착하면서 1579년-1603년 사이에 모로코는 한때 최고 번성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각자 문화와 예술을 가져왔고 결국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많은 문화유산을 모로코에 남겨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공격을 받아 모로코의 몇몇 해안 도시들이 그들의 점령지로 되었습니다.
모로코는 1700년까지 포르투갈과 여러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포르투갈이 점령하던 거의 모든 해안 도시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1904년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으로부터 무력으로 점령되면서 스페인 령과 프랑스 령으로 각각 나뉘어졌고 프랑스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1950년 모로코 술탄은 프랑스에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프랑스가 초기에는 거부했으나 모로코는 끈질긴 독립투쟁을 이어간 끝에 드디어 1957년 술탄 모하메드 5세가 왕좌를 되찾았고 드디어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서사하라에서 자국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았습니다. 1974년 Hassan 2세 국왕은 스페인으로부터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모로코 전국 각지에서 시민 35만명을 모아서 서부 사하라에서 평화적인 녹색행진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나 국제 사법재판소는 모로코의 서사하라에 대한 소유권 청구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핫산 2세 국왕은 스페인과 모리타니아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여 서사하라 지역을 모로코-스페인-모리타니아 3개국이 관할할 것에 잠정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협상에서 배제된 알제리아의 지원으로 서사하라 사막에 거주하는 일부 부족들이 Polisaro 전선(사하라 분리 단체)을 결성해서 오늘날까지 이 지역은 영토분쟁 지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재 Polisario는 서부 사하라 내륙에 위치한 Tindouf 지역을 거점을 둔 대규모 난민촌에 살고 있습니다. 유엔은 이러한 상황에 3 나라간의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 중입니다.
모로코와 알제리아는 유엔 중재로 수차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서로의 상반된 입장차 때문에 아직까지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1999년 7월 23일 핫산 2세 국왕이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아랍 세계의 현대사에 있어 가장 오래동안(38년간) 군림한 군주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재 핫산 2세 왕의 아들 모하메드 6세가 모로코 알라위 왕조 18번째 왕으로 통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