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헤시라스 회의
Algeciras Conference
스페인 알헤시라스에서 열린 국제회의(1906. 1. 16~4. 7).
프랑스와 모로코정부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유럽 강대국들과 미국이 개최한 이 회의는 제1차 모로코 위기때 절정에 이르렀다. 2년 전에 영국과 프랑스가 조인한 화친 협상에는 영국이 모로코에 대한 프랑스의 특별한 이해를 지지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프랑스가 모로코의 술탄에게 경제 및 치안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해 협정을 이행하려고 하자, 이에 분개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1905년 3월 모로코의 탕헤르로 갔다. 빌헬름은 술탄의 통치권을 재확인하고 교역을 위한 '문화 개방'을 계속 유지하고 요구함으로써 프랑스의 의도에 정면으로 맞섰다.
빌헬름 2세가 1906년에 알헤시라스에서 회의를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설득하자 긴장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러나 독일의 기대와는 반대로 이 회의에서 독일의 입장을 지지한 나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뿐이었으며 이탈리아와 러시아는 물론 영국과 미국마저도 프랑스를 지지했다. 그러나 1906년 4월 7일에 조인된 알헤시라스 협정은 겉으로는 프랑스의 세력 확장을 제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협정은 술탄의 독립성과 모든 열강의 경제적 평등을 재확인하고, 모로코의 치안을 맡은 프랑스와 스페인 경찰은 스위스 감찰 장관의 지휘를 받도록 규정했다. 알헤시라스 회의의 진정한 의미는 영국과 미국이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확고히 지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로코 위기를 전주곡으로 해서 이어질 제1차 세계대전 때 이 열강들이 맡게 될 역할을 예시해준다.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Algeciras Conference
스페인 알헤시라스에서 열린 국제회의(1906. 1. 16~4. 7).
프랑스와 모로코정부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유럽 강대국들과 미국이 개최한 이 회의는 제1차 모로코 위기때 절정에 이르렀다. 2년 전에 영국과 프랑스가 조인한 화친 협상에는 영국이 모로코에 대한 프랑스의 특별한 이해를 지지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프랑스가 모로코의 술탄에게 경제 및 치안에 관한 '개혁안'을 제시해 협정을 이행하려고 하자, 이에 분개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1905년 3월 모로코의 탕헤르로 갔다. 빌헬름은 술탄의 통치권을 재확인하고 교역을 위한 '문화 개방'을 계속 유지하고 요구함으로써 프랑스의 의도에 정면으로 맞섰다.
빌헬름 2세가 1906년에 알헤시라스에서 회의를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설득하자 긴장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러나 독일의 기대와는 반대로 이 회의에서 독일의 입장을 지지한 나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뿐이었으며 이탈리아와 러시아는 물론 영국과 미국마저도 프랑스를 지지했다. 그러나 1906년 4월 7일에 조인된 알헤시라스 협정은 겉으로는 프랑스의 세력 확장을 제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협정은 술탄의 독립성과 모든 열강의 경제적 평등을 재확인하고, 모로코의 치안을 맡은 프랑스와 스페인 경찰은 스위스 감찰 장관의 지휘를 받도록 규정했다. 알헤시라스 회의의 진정한 의미는 영국과 미국이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확고히 지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로코 위기를 전주곡으로 해서 이어질 제1차 세계대전 때 이 열강들이 맡게 될 역할을 예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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