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ouite Dynasty (알라윗 왕조)
AD 1661-
Alaouite 왕조 (아랍어 : سلالة العلويين الفيلاليين, Sulālat al- 'Alawiyyīn al-Fīlālīyn)는 현재 모로코 왕실이다. Alaouite라는 이름은 1631년 샤리프 이븐 알리 (Sharif ibn Ali)가 무하마드(이슬람교 창시자)의 사위이자 사촌인 Alī ibn Abī Ṭālib에서 온 것이다. 그의 아들 뮬라이 알 라시드 (Mulay Al-Rashid, 1664-1672)는 사디(Saadi)왕조의 몰락 후 국가를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Alaouites는 13세기 말에 중동 Heasaz의 Yanbu 마을에 살고 있던 Al Hassan Addakhil이 모로코 동남부 지역 Tafilalet의 주민들에 의해 모로코에 오게되었다. 그들은 무하마드의 후손 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 카리스마르 의미하는 아랍어인 바라카(barakah "축복") 덕분에 이 지역 대표농작물인 대추야자 수확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의 후손들은 사디 왕조의 지도자 인 아마드 알 만수르 (Ahmad al-Mansur, 1578-1603)의 죽음 이후 모로코 남부에서부터 권력을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1659년에 드디어 술탄 Mulay Rashid (1664-1672년)에 의해 Marrakesh는 정복되었다. 이 후 모로코 북부까지 장악하고 새로운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 후 Ismail Ibn Sharif (1672-1727) 왕에 의해 더욱더 발전했으며, 지방 부족들을 단합해서 통일된 국가를 창설했다. 알라윗 왕족은 상대적으로 베르베르 족들에 비해 숫적으로 적어 Isma'īl 왕대에 이르러 새로운 흑인 노예군대를 결성했다.
Abderrahmane(1822-1859) 왕 시가에서 모로코는 유럽 강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모로코가 Emir Abd al-Qadir(알제리 독립 운동 지도자)을 지지하고 그의 망명을 받아주자 1844 년에 Isly의 전투에서 프랑스 군에 의해 공격 받고 패배하여 Emir Abd al-Qadir지지를 포기했다.
Muhammad IV (1859-1873)와 Hassan I (1873-1894)의 통치 기간에 알라윗 왕조는 무엇보다도 유럽 국가와 미국과의 무역 관계를 장려했다. 베르베르 족과 사하라 베두인 부족에 대한 통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프랑스 군대의 긴밀한 협조하에 모로코 군대 및 행정부 근대화에 착수했다. 모로코 북부를 정령하고 있었던 스페인과의 전쟁(1859-1860) 패배 후 서유럽 여러 나라들이 모로코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마드리드 조약(1880)에서 모로코의 독립성이 보장되었지만, 프랑스는 더 큰 영향력을 얻었다. 이처럼 커져가는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한 독일의 모로코 영향력 시도(1905-1906년)로 인해서 모로코는 첫 번째 위기와 1911년의 두 번째 모로코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1906년 스페인 남부 알헤스라스에서 열린 협상에서 서유럽 강대국들(영국-프랑스-스페인-독일) 간에 가까스로 외교적 타협을 보았다.
결국 모로코 국왕은 1912년 12월 3일에 페스(Fes)조약에 서명을 통해 프랑스 보호령을 인정해야만 했다. 동시에 북부 모로코의 Rif 지역은 스페인 지배하에 들어갔다.
모로코는 그후부터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다가 1956년 3월 2일에 드디어 독립했다.